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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 2026년 1월 21일 /

영원한 이방인: 음악과 코드 사이에서

스탠포드 컴퓨터 음악 박사가 구글 엔지니어로 11년을 버티며 배운 것들

#다양성 #회복탄력성 #커리어

2011년, 첫째와 함께 거닐던 스탠퍼드의 교정

1. Intro: 낯선 행성에서의 인사

실리콘밸리의 네트워킹 모임에 참석할 때마다 마주하는 질문이 있다. "전공이 컴퓨터 음악(Computer Music)이라고요?"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이곳의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와 내 이력 사이에는 꽤나 깊은 골짜기가 있으니까.

2000년대 초반, 전업 뮤지션이 되기 위해 부던히 노력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그 후 한동안은 실용음악 대학 강사와 컴퓨터 음악 컨설팅을 전전했다. 그러다 2009년 늦깎이 유학길에 올라 스탠포드 CCRMA(컴퓨터 음악 및 음향 연구소)에서 박사를 마치고, 2014년 구글 크롬 팀에 합류해 어느덧 11년 차 엔지니어 겸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이쯤 되면 으레 튀어나오는 질문이 하나 있다.

"음악 하던 사람이 어떻게 구글에서 엔지니어링을 해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는 것으로 내 블로그의 문을 열어보려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코딩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2. 탈바꿈: 뮤지션에서 엔지니어로

박사 과정 시절, 나는 방목된 소처럼 오직 '창의성' 하나에만 몰두했다. 코드가 좀 엉망이어도 결과가 새롭고 신선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구글은 달랐다. 이곳에는 거대한 프로세스와 시스템, 그리고 냉정한 평가 메트릭이 존재했다.

세상에서 가장 큰 C++ 오픈소스 프로젝트인 크로미움(Chromium)에서 월드 클래스 엔지니어들과 코드 리뷰를 주고받는 일은 매일이 천국이자 지옥이었다. 뮤지션으로서의 자유분방한 창의성을 내려놓고, 엔지니어의 규율을 배우는 시간은 고통스러웠다. 그것은 완만한 성장 곡선이 아니었다. 뼈를 깎는 '탈바꿈'의 시간이었다. 독창성이 지배하던 세상에서 '유지보수 가능성(Maintainability)'과 '확장성(Scalability)'의 세계로 강제 이주당한 기분이었다.

그 고통을 견디게 해 준 것은 역설적이게도 컴퓨터 음악이었다. 내가 작성한 코드가 전 세계 수억 명의 사용자가 쓰는 컴퓨터 음악의 도구가 된다는 것. 그 압도적인 '임팩트'와 '스케일'을 체감하며, 나는 비로소 세상을 바라보는 완전히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

3. 뮤직 테크놀로지가 엔지니어링을 만났을 때

그렇다면 음악 박사 학위는 쓸모가 없었을까? 반전은 적응기를 마치고 실무 깊숙이 들어갔을 때 일어났다.

도메인 지식(Domain Knowledge)의 힘

"오디오 엔지니어는 일 년에 한 번씩 링 버퍼(Ring Buffer)를 짠다"는 자조 섞인 농담이 있다. 그만큼 기본적이면서도 까다로운 기술이다. 일반적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게는 생소한 블랙박스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숨 쉬듯 익숙한 모국어 같은 것이었다.

코딩 실력 자체는 그 당시의 시니어들보다 부족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십년이 넘는 도메인 지식 덕에 나는 이 엔지니어링을 왜 해야 하는지, 결과물이 어떻게 나와야 하는가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AI가 코딩을 대신해 주는 시대가 올수록 이러한 도메인 지식의 가치는 더욱 커질 것이다. 낮은 레벨의 구현은 AI에게 맡기고, 인간은 전체적인 방향을 설정하고 결과물을 직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디렉터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술을 지배하는 표준을 만들다

현재 웹 표준을 제정하는 W3C 오디오 워킹 그룹의 의장을 맡고 있다. 2018년 의장직을 맡은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그룹의 방향성을 수정하는 것이었다.

기존에는 순수 CS 전공자들이 Web Audio API를 단순히 처리해야 할 '엔지니어링 프로젝트'로만 바라봤기에, 실제 뮤지션들이 원하는 기능과는 괴리가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음악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온 사용자로서 기술을 '경험'의 관점으로 API 디자인에 접근했다. 기술과 예술의 교차점에 서 있었기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감각의 빈틈을 메울 수 있었던 것이다. 개발자들이 다시 웹 플랫폼에 희망을 갖고 음악/음향 앱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의 이질적인 배경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4. 회복탄력성: 상처를 훈장으로 만드는 법

많은 사람이 한 회사에서 11년을 다녔다고 하면 "지루하지 않냐"고 묻는다. 하지만 주니어에서 시니어, 테크 리드, 그리고 매니저로 역할이 바뀌며 매일 새로운 문제를 마주했기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나를 지탱해 준 것은 엄청난 재능이 아니라, 바닥을 쳐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굳은살, 바로 회복탄력성(Resilience)이었다. 힘들 때마다 나는 과거의 두 가지 기억을 떠올린다. 음악계에서 두 번이나 사기를 당해 커리어를 포기했던 기억, 그리고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모멸감이다.

대학 전임 강사 시절, 학교 홍보를 위해 서울의 한 고등학교를 찾아갔을 때였다. 선생님께 학교 로고가 박힌 손톱깎이 세트와 음료수 상자를 건네며 잘 부탁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 선생님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발로 내가 가져온 물건을 툭툭 걷어차며 말했다.

"요새 누가 뭐 이런 걸 갖고 오나."

그때의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갓 태어난 첫째 아이 생각에 당장 그만둘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날의 비참함은 나를 각성시켰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다. 한국을 떠나자." 그 선생님의 발길질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명문고, 명문대를 나온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지인들 앞에서 "사기당하고 잡상인 취급받던" 이야기를 하면 다들 신기해한다. 하지만 그 아픈 기억들이야말로 내가 번아웃 없이 40대 후반까지 살아남게 한, 가장 단단한 갑옷이다.

5. Outro: 연결하는 자가 살아남는다

스티브 잡스는 "창의성은 단지 사물을 연결하는 것(Creativity is just connecting things)"이라고 했다.

만약 당신이 비전공자라서, 혹은 남들과 다른 배경을 가져서 위축되어 있다면, 확신을 가지고 말하고 싶다. 당신의 그 '이질적인 과거'가 미래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라고.

앞으로 이 블로그를 통해 실리콘밸리의 기술 트렌드, AI 시대의 테크니컬 리더십, 그리고 딴따라 출신 구글러의 시선으로 본 테크 세상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나의 이 다름이 당신에게 또 다른 가능성의 증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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