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좁은 감옥
"The only constant is change."
이십 대의 나는 "내가 뭘 해야하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얼핏 들으면 주변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뚝심 있는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당시의 나는 내게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있다고 믿었고, 그 확신 하나로 거침없이 나아갔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것은 특별한 혜안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나는 '자기 확신'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좁은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을 뿐이다. 콘크리트처럼 굳어버린 그 마음 탓에 얼마나 많은 기회를 흘려보냈는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남들과 다른 생각, 다른 인생 경로가 주는 불편함을 견디기 힘들었던 나는 사람들을 멀리했다. 그리고 그 고립을 은근히 즐겼던 것 같다. 고독이 주는 멜랑콜리에 약간의 나르시시즘을 섞어 마시며, 그 불편함을 나의 '우월함'이라고 착각했다. 묵묵히 혼자 실력을 갈고닦으면 언젠가 영화처럼 누군가 나를 알아봐 주리라는 유치한 희망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 이십 대와 같은 삶의 방식을 고수하려는 젊은 친구들을 본다면, 아니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나에게 돌아갈 수 있다면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며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제발, 그 고집 좀 내려놓으라고."
깊이보다 넓이를, 독학보다 멘토를
너무 이른 나이에 자신의 미래를 확신하고 콘크리트를 붓는 것은 꽤 위험한 도박일 수 있다. 적어도 20대만큼은 깊이(Depth)보다는 넓이(Breadth)를 탐색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David Epstein이 그의 책 <Range>에서 강조했듯, 커리어 초반에는 다양한 분야를 맛보는 샘플링 기간(Sampling Period)이 필요하다. 스물두 살에 "난 내 목표가 확실해. 내 인생은 이거야"라고 단언한다면, 그건 당신이 천재라서가 아니라 아직 자신이 누구인지, 세상에 무엇이 있는지 충분히 탐색해 보지 못했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
이 과정에서 가장 가성비 좋은 전략은 혼자가 아닌 가이드와 함께하는 것이다. 무작정 한 분야에 뛰어들어 5년을 허비하고 뒤늦게 방향을 트는 것과, 1년 동안 5명의 멘토를 만나 그들의 경험을 빌려 가능성 높은 분야를 추려낸 뒤 4년을 집중 투자하는 것. 어느 쪽이 더 효율적인 선택일까?
좋은 멘토는 낯선 여행지의 베테랑 가이드와 같다. 그들이 걸어온 길의 지도를 펼쳐 보이는 순간, 우리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건너뛸 수 있다. 멘토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의 넓이를 충분히 체감해 보자. 비로소 더 좋은 출발점에서, 제대로 된 방향으로 전력 질주할 수 있게 된다.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 바로 그때가 질주할 타이밍이다.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없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초연결의 시대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에게나 닿을 수 있다. 여기서 팁 하나. 다짜고짜 "저의 스승이 되어주십시오"라고 하는 것보다, 대신 구체적인 고민을 들고 조언을 구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다. 사람들은 조언을 구하는 이에게 기꺼이 자신의 지혜를 빌려준다.
거절을 두려워 말고 용기 내어 문을 두드려보자. 그 수많은 문 중에서 하나가 열리는 순간, 당신의 세상은 겉잡을 수 없이 넓어질지도 모른다.
파레토의 법칙과 커리어 레버리지
고집을 내려놓기로 마음먹었다면, 이제는 '어떻게'가 문제다.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해야 가장 효율적일까? 나는 여기서 '파레토의 법칙(80/20 Rule)'을 슬쩍 빌려본다.

파레토의 법칙은 20%의 원인이 결과의 80%와 연관이 있다는 관찰에서 출발한다. 이 원칙을 커리어 개발에 적용하면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본인이 가진 에너지의 20%를 앞으로의 성장을 견인할 레버리지에 투자하는 것. 즉, 이 20%의 전략적 선택이 손익분기를 훨씬 넘어서는 이득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계산이다.
이 결정적인 20%는 커리어 영역마다 다를 것이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예로 들어보자.
- 20대라면: 이 결정적 20%를 '경험의 넓이'를 확보하는 데 써보는 건 어떨까? 다양한 시도를 통해 나에게 딱 맞는 도메인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을 목표로 삼아보자. 여러 사회적 서클에 발을 담그고, 여러 곳을 여행하며, 멘토들을 포함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이다. 이것저것 찔러보는 것이 낭비 같지만, 사실은 평생을 걸고 파고들 20%의 적성을 발견하기 위한 가장 빠른 지름길일 수 있다.
- 30대라면: 20대에 발견한 그 적성에 80%의 에너지를 집중 투자하는 것이 현명하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해당 분야에서 대체 불가능한 최고가 되는 것, 바로 '깊이'가 승부처다. 나머지 20%는 전략적인 네트워킹을 통해 이직, 사이드 프로젝트 혹은 새로운 배움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회의 문을 열어두는 데 사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테크 이벤트, 디벨로퍼 밋업, 학술 컨퍼런스 등의 참여가 좋은 예이다.
- 40대라면: 대부분의 에너지는 축적된 실력을 바탕으로 본인의 영향력(Influence)과 임팩트의 규모(Scale)를 키우는 데 집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남은 에너지 20%는 후배 양성과 멘토링에 투자해보자. 내가 가진 노하우를 나눔으로써 타인의 성장을 돕는 것은, 역설적으로 나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가장 강력한 레버리지다. 당신의 코드 한 줄보다, 당신이 유기적으로 엮어낸 팀의 분위기가 조직 전체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보이지 않는 손이 된다.
"내가 코딩 안 하고 이런 엉뚱한 데 시간을 써도 되나?"
정해진 원칙 없이 맨몸으로 이 과정을 겪으며 가장 힘들었던 건 다름 아닌 정체성의 혼란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수시로 찾아오는 의구심이 나를 괴롭혔다. 당장 괄목할만한 성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이 20%의 투자가 언젠가 나를 더 큰 세상으로 이끌어줄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이 있었다면 불필요한 번뇌 없이 하루하루를 더 알차게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하기(Rethinking)
Yet in a turbulent world, there’s another set of cognitive skills that might matter more: the ability to rethink and unlearn.
- Adam Grant, <Think Again>
급변하는 세상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단순한 지식보다 그 지식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업데이트하는 능력이다. 절대적인 진리나 영원히 유효한 아이디어는 없다. 변화만이 유일한 불변의 상수이다. 상황이 바뀌고 새로운 데이터가 손에 쥐어진다면, 지체 없이 피벗(Pivot)할 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마음에 콘크리트를 붓지 않았으면 한다. 그 콘크리트가 굳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꼰대'가 되고 말 테니까. 자신의 믿음을 절대적 사실이 아닌, 언제든 검증하고 수정할 수 있는 가설로 여기는 '과학자적 사고방식'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그러면 실패는 더 이상 끝이 아니라, 유의미한 실험 데이터가 되고 관점은 자연스레 바뀔 것이다.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실패를 맛봤던 스물두 살의 나는, 그것이 내 인생의 종말인 줄 알았다. 성공을 확신했던 나는 날카롭게 각인된 실패에 다쳐 꽤 긴 시간을 방황했다. 만약 그때 내 곁에 좋은 가이드가 있었다면 세상에서 가장 좁은 감옥에서 빠져나오는 일은 훨씬 쉬웠을 것이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찾아와 조언을 구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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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성공과 실패는 관점의 문제다: "왜 실패라고 단정해? 단순히 뜻대로 되지 않아서? 애석하게도 앞으로 살면서 네 뜻대로 되는 일은 많지 않을거야. 벌어진 일을 실패라고 단정하고 확신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 모든 확신을 가설로 여기고, 그 가설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순간, 진짜 배움과 성장이 시작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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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취약해질 용기를 가져라: "완벽할 수 없다는 것. 나 혼자 모든 것을 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취약해질 용기(vulnerability)를 갖는 것이 마인드 셋 전환의 첫걸음이야. 도움을 구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더 멀리 가기 위한 가장 지혜로운 전략임을 잊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