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서로의 빌런이 되었나
네 탓이라는 가장 달콤하고 비겁한 위로

소셜 미디어를 둘러보다 보면 뒷맛이 씁쓸한 글들이 있다. 우연히 마주친 두 편의 글이 유독 그랬다. 겉보기엔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지만, 그 뿌리에는 '남 탓'이라는 서늘한 메시지가 깔려 있었다. 본인이 느끼는 불만을 타인 탓으로 돌리는 것은, 어쩌면 치열한 업무 환경 속에서 멘탈관리를 위해 우리 모두가 가진 무의식의 회피 기제가 작동한 결과일지 모른다. 그렇게 함으로써 관계의 실패로부터 홀가분하게 도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달콤한 회피는 결국 건강한 조직문화를 해치고 소통의 단절을 가져올 뿐이다. 서로를 '빌런'으로 낙인찍는 이 현상의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소모적인 갈등을 해결할 수 있을까?
케이스 1: "40대 꼰대들의 특성"
링크드인을 둘러보다 40대 이상 "아재"들의 공통점을 분석해놓은 글이 눈에 들어왔다. 그 글은 함께 일하는 40대 남성들을 단점 투성이이자 자신의 커리어를 방해하는 '빌런'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진지하게 받아들이기에는 지나치게 두서없고 감정적인 글이었다. 소셜 미디어 특유의, 표현의 자유를 핑계 삼은 흔한 감정 배설이려니 하고 넘기려 했다. 하지만 초반에 느꼈던 씁쓸함은 차분히 글을 읽어 내려가자 이내 측은함으로 바뀌었다.
첫째, 직장인의 소셜 네트워크에서 누군가를 향한 극단적인 조롱과 비난을 여과 없이 포스팅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것은 자정 작용이 부족한 개인의 미숙함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경직된 조직문화 내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정상적으로 수용되거나 건강하게 해소될 통로가 완벽히 막혀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둘째, 직장 내 세대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불편함을 특정 세대의 탓으로만 돌려 규정짓는 순간, 남는 것은 관계의 단절뿐이다. "40대는 모두 꼰대고 말이 안 통한다"는 선언은 결국 "나 역시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더 이상 노력하지 않겠다"는 체념의 또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관계의 불편함을 남의 탓으로만 돌리면 속은 홀가분할지 몰라도, 결국 그 자신도 "말이 통하지 않는 꼰대"가 되고 마는 것이다.
셋째, 자신의 커리어에 미칠 치명적인 부작용을 인식하지 못함이 안타까웠다. 공개적인 커리어 플랫폼에 쏟아낸 날 선 비난을 우연히 마주칠 직장 상사나 잠재적인 리크루터들이 그것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케이스 2: "왜 다들 나처럼 목숨 걸고 일하지 않지?"
소셜 미디어에서 마주친 한 포스트가 며칠 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느 스타트업 창업자로 보이는 글쓴이가 '워라밸'을 중시하는 사람들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을 토해낸 글이었다. 회사의 성장보다 개인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태도를 한심하게 여기는 논조를 읽으며, 나는 강한 거부감과 함께 한편으로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무엇이 이 사람을 이토록 극단적인 사고로 몰아넣었을까. 그의 글 행간에는 쉽게 따라와 주지 않는 조직원들에 대한 상처와 실망감이 배어 있었다.
그 글을 읽고 난 뒤, 나는 글쓴이에 대해 더 이상 알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여나 비즈니스 현장에서 마주치지 않기를 바랄 정도였다. 이는 기업가로서 치명적인 손실이다. 자신의 소신을 뚜렷하게 밝히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소신이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 대한 비난을 통해서만 밝힐 수 있는 것이라면 결국 리더가 가진 '사회적 자본'은 치명적으로 훼손될 수밖에 없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평판은 곧 자산이자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회사 일보다 자신과 가족을 더 소중히 여긴다고 한탄하기 전에, 리더는 스스로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내가 제시한 목표와 이상이 정말로 그들에게 가치 있는 것인가?" 단 두 사람만 모여도 서로 다른 이상과 목표를 가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치다. 하물며 수십 명이 모여 일하는 조직에서 구성원마다 생각이 다른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조직이 다른 가치관을 인정하지 못하고 오히려 비난의 화살을 그 구성원들에게 돌리게 될 때, 조직은 예상치 못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 첫째, 회사의 비전이 구성원들을 충분히 매료시키지 못했다는 아픈 실패를 드러내는 결과가 된다.
- 둘째, 뜻을 달리하는 사람들은 조직을 떠나야 한다는 배타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이렇게 떠난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다닐까?
- 셋째, 조직에 남은 사람들조차 입을 닫고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게 된다. 리더의 극단적인 잣대 앞에서 구성원들은 더 이상 회사의 비전에 자신을 동기화하려 애쓰지 않는다. 그저 리더의 눈에 거슬리지 않는 최소한의 역할만 수행하는 '유령 같은 존재'가 되어버릴 뿐이다.
- 넷째, 맹목적인 추종자들은 리더의 잘못된 패턴을 답습한다. 자신들의 의견과 다른 동료들을 리더가 했던 것처럼 비난하고 공격하게 되며, 이는 조직 문화 전체를 병들게 만든다.
스타트업 특유의 절박함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구성원 각자의 삶의 무게와 우선순위를 탓하는 데 에너지를 쏟는 것은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리더십의 역량은 자신의 방향과 속도에 맞추지 못하는 이들을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비전이 어떻게 그들의 삶과 연결될 수 있는지 끈질기게 설득하고 영감을 불어넣는 것이라 생각한다.
반응보다는 성찰 후 행동을
"꼰대는 답이 없다"거나 "요즘 애들은 열정이 없다"는 불평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레퍼토리다. 블로그 포스트 한두 개로 해결될 문제는 애초에 아니었다. 하지만 의외로 해결방법은 간단하다. 결국 답은 그 흔해 빠진 '공감'이다.
먼저, 40대 동료들을 향해 날 선 비판을 쏟아냈던 첫 번째 글의 저자를 떠올려 본다. 어쩌면 그들은 지금까지의 커리어 동안 자신을 진정으로 아껴주고 소통하려 노력하는 대상, 즉 '기댈 수 있는 어른'을 조직 내에서 마주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면 내 커리어에서 얻은 가장 큰 기쁨 역시 예기치 못한 순간에 세대차이를 넘어 나의 미숙함을 기꺼이 품어준 인생 선배들을 알게 되었을 때였다.
다음으로, 자신과 결이 다른 구성원들을 한심하게 여겼던 두 번째 글의 창업자를 떠올려 본다. 사실 나는 '영웅적 희생'을 미화하는 성공담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다음 글에서 설명할 계획이다) 그 위험한 동경과 신기루가 한국 사회와 조직 문화를 병들게 한 주범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더라는 위치는 영웅적인 희생까지는 아니더라도 깊은 인내를 요구한다. 하고 싶은 말이 목 끝까지 차오르더라도 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위해 한 번 더 통찰하고, 한 번 더 공감하며, 기꺼이 인내해 내는 것. 그것이 진짜 리더의 모습이 아닐까.
우리의 커리어는 누군가를 꼰대라고 선을 긋거나, 자신을 따르지 않는다고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며 엇나간 증오로 채우기엔 너무 귀하고 짧다. 이해할 수 없는 다름을 마주했을 때 즉각적으로 날 선 반응(React)을 보이기보다, 잠시 멈춰 한 번 더 성찰 후 행동(Reflect and Act)할 수 있는 여유와 지혜가 모두에게 조금 더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