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영웅보다는 단단한 시스템을
지속 가능한 퍼포먼스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반짝하는 타이밍
"You'll achieve much more by being consistently reliable than by being occasionally extraordinary."
— Sahil Bloom, <The 5 Types of Wealth>
나에게 2019년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한 해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구글 개발자 컨퍼런스인 "Google I/O" 무대에 연사로 섰던 순간이다. 수많은 관문을 거치고 리허설을 마친 뒤 무대에 섰을 때, 나는 구글 입사 후 5년 동안 미친 듯이 쏟아부었던 프로젝트들을 전 세계 개발자들에게 마음껏 자랑할 수 있었다.

2019년, 구글 I/O 무대에서
사내에서도 꽤 큰 업적이었기에, 당시 매니저의 지지를 업고 조금 이른 타이밍에 과감히 승진을 신청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당시 승진 심의 위원회로부터 받은 피드백은 충격적이었다. "지속 가능한 퍼포먼스(Sustainable Performance)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더 지켜봐야 한다."
화려한 무대, 성공적인 발표, 쏟아지는 박수... 이 모든 것이 '반짝 성과'일 수도 있다는 지적이었다. 당시의 어린 마음으로는 그 결정을 도저히 이해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매니저가 되고 리더십을 공부하며 깨달았다. 구글이 왜 그토록 '지속가능성'에 집착하는지를.
영웅을 경계하는 이유
이 사고의 출발점은 '팀워크'다. 아무리 출중한 개인이라도 혼자서는 거대한 성공을 만들 수 없다. 우리가 말하는 괄목할 만한 성과란, 팀이 준비한 타임라인과 사회경제적 타이밍이 맞아떨어졌을 때, 마침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에 의해 발현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구글은 잠깐 반짝하고 빛나는 실적보다는 팀의 일원으로서 얼마나 지속적으로 공헌하는가에 훨씬 더 높은 점수를 준다.
구글의 승진 시스템이 독특한 또 다른 이유는 '자격 요건'에 있다. 승진해서 리더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리더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을 승진시킨다. 즉, 승진은 신분 상승이 아니라 역량에 대한 사후 인정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 승진 후에도 본연의 업무가 크게 달라지지 않아 혼란이 적다.
- 동료들의 긍정적인 피드백(Peer Review) 없이는 승진이 불가능하므로, 동료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를 받는 리더가 자연스럽게 탄생한다.
- 능력이나 리더십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 '정치'로 올라가는 것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정책들은 자연스럽게 팀워크와 지속성에 집중하는 문화를 만든다. 하지만 "아름다운 문화"만으로는 부족하다. 문화가 공감대를 만든다면, 또 다른 한 편에는 실용적인 시스템과 기계적인 프로세스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화는 허황된 이상에 불과할 뿐이다.
시스템이 무너진 곳에서 영웅이 태어난다
"You do not rise to the level of your goals. You fall to the level of your systems."
– James Clear, <Atomic Habit>
지속 가능한 퍼포먼스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팀이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만드는 것이다. 팀 구성원들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새로운 상황을 마주칠 때마다 매번 원점으로 돌아가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을 타개해 나갈 때마다 배우는 것들이 있겠지만, 이러한 혼란과 극복을 되풀이할 때마다 소비하게 되는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는 결코 만만치 않다. 예측 불가능한 돌발 상황은 지속 가능한 퍼포먼스의 최대의 적이다.
시스템과 프로세스가 가져다주는 가장 큰 가치는 빠른 의사결정, 집중된 실행, 그리고 팀의 안정이다. 예측하지 못한 난관을 맞닥뜨렸을 때 팀 전체가 패닉 모드로 돌입하여 퇴근 시간 이후에도 그룹 챗이 가동되고, 십수 개의 이메일 스레드가 동시다발적으로 오고 간다면, 이는 시스템이 없거나 제대로 동작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엔지니어링 팀이 하루의 절반을 넘는 시간을 비상 상황의 타개를 위한 의사소통과 결정에만 사용한다면, 그만큼 엔지니어링 프로젝트의 속도와 질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눈코 뜰 새 없이 사건 사고를 처리하는 그 바쁜 느낌이 언뜻 생산적으로 느껴질 수 있으나, 이러한 "바쁨을 위한 바쁨"은 의미 있는 임팩트로 이어지기 힘들고, 결코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예측하지 못한 사건을 팀이 어떻게 해결하는지 그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는 것은 꽤 많은 힌트를 준다. 왜 예측하지 못했는지, 그리고 해결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 무엇이었는지부터 질문을 던져보면 좋다. 전자에 대해서는 팀 내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하고, 후자에 대해서는 리더십에게 제대로 된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스템이 무너진 곳에서 비로소 영웅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 등장이 과연 반가운 일일까?
나이트 라이더와 맥가이버
나이트 라이더와 맥가이버 - 필자가 어릴 때 밤마다 즐겨보던 해결사가 등장하는 심야 드라마들이다. 플롯은 늘 한결같다. 엄청난 사건 사고와 혼란을 헤쳐나가며 결국에는 주인공이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모든 사건을 한 방에 처리한다. 시청자들은 여기서 간접적인 안도감과 통쾌함을 느낀다. "영웅은 멋진 것"이라는 위험한 동경이 8세 아이의 마음에 각인되는 순간이다.
영웅은 난세에 나타난다. 그들이 칭송받는 이유는 남들이 못하는 '초인적인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인적인 기여는 본질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하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 해결에 있어서 누군가의 초인적인 기여가 필요했다면, 이는 칭송하고 끝날 일이 아니라 팀의 시스템과 프로세스에 대해 전반적으로 검토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계속된 희생을 강요받는 탑 탤런트들은 결국 번아웃되어 떠난다. 영웅에게 의존하던 팀은 그가 떠나는 순간 와르르 무너진다. 이 지점에서 리더인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을 필요가 있다. "우리 팀은 영웅 없이도 돌아가는가?"
영웅 없는 승리
물론 위기 상황에서 앞장서 몸을 던진 영웅들의 헌신을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그들의 헌신은 칭송받아야 하고 보상받아야 한다. 하지만 위기를 넘긴 후, 우리의 시선이 향해야 할 곳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 지식의 분배: 영웅의 노하우가 팀 전체로 퍼지도록 코칭과 멘토링 세션을 만든다.
- 기회의 재분배: 특정 팀원에게 업무가 몰리지 않도록 프로젝트를 재할당한다.
- 시스템 재건: 앞으로 그런 '초인적인 노력'이 필요 없도록 프로세스를 고친다.
효율적인 매니지먼트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난세에도 누군가의 영웅적인 희생 없이,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계획된 성과를 지속적으로 달성해 내는 것이다.
순간적이고 영웅적인 기여는 '보너스'로 축하하더라도, 팀원의 꾸준한 성장이 '승진'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모두가 지속 가능한 속도로 함께 달릴 수 있는 트랙을 만드는 것. 결국 그것이야말로 리더가 집중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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